상념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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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원초적 기술

    20대 중반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얻은 것이 하나 있다면 글을 통한 표현 '기술(技術)'이다...라고 생각한다.전공의 특성상 가능한한 서술하고자 하는 대상을 정확히 기술(記述)하도록 하는 연습을 나름 많이 해왔고, 가능한한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에 최대한 부합하는 어휘를 선택하도록 신경써 왔으며, 표현되기 전의 image/idea를 다 담아낼 수 있도록 문장을 촘촘히 짜려 노력해 왔었다. 그 덕분에, 꼭 법률적 문서가 아니더라도,

죽음이란 무엇인가(켈리 셰이건)-독서 소감

    켈리 셰이건의 "death"(국내판 서명: 죽음이란 무엇인가).저자 자신의 물리주의적 관점을 기반으로 하여 무신론적 세계관, 영혼의 존재 내지 불멸성의 부인을 이론전개해 나가는데, 인상적인 것은, 법학에서의 증명책임의 분배 개념처럼, 신의 존재나 영혼불멸에 관하여는 이를 주장하는 측에 증명책임이 있지, 부인하는 입장에서 신이나 영혼의 부존재를 입증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서, 저자 자신은 영혼 등의 존재에 관하여 이를 없다고 단정하는

도덕적 임의성(존 롤즈)

    사회에서 취득하게 되는 과실인 부와 명예 등과 관련하여, 기존의 전통적인 견해는 그것이 능력과 성실성에 대한 보상으로서 응당 받을 자격이 있다고 본다(당초부터 선친으로부터 물려받는 재산이나 사회적 지위가 같은 것은 논외).이에 반하여 도덕적 임의성 개념은, 해당 개인이 태어난 시대와 그 사회가 그 개인의 자질과 특성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우연적 요소 때문에 부와 명예가 돌아간 것일

치매와 소송무능력

    치매노인의 토지가 자녀 중 1인에 의해 임의로 소유권이 넘어간 것을 회복하고자 의사무능력 무효를 이유로 소유권이전등기 말소청구를 한 사안인데, 성년후견인 지정도 받기 전에 무리하게 소송진행하였다가 소송대리권 흠결(의사무능력인 치매노인으로부터 적법한 소송위임 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이유로 소가 각하되었다는 이야기를 상담자로부터 들었습니다;;재판부가 성년후견인 지정에 의한 소송대리권 추인까지 안 기다려 준 것이지요... 흥미로운 것은 이 경우 소송비용부담

목포교도소 접견후기

    목포교도소 접견 후기;;1. 우선 목포역에서 엄청 멀다. 20킬로 가까이 되는 것 같은데, 택시타면 미터기 안 키고 무조건 2만원 받음;; 그리고 완전 시골길로(근처가 일로'읍') 휴양지 온 것 같음.2. 다른 구치소와는 달리 교도관이 데리러 올 때까지 정문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데 대기실에 무슨 목욕탕마냥 락커가 있어 금지품인 휴대폰등을 두고 가야 함.3. 자세히는 못봤지만 접견실 자체가

plus minus zero

    소송수행을 하다 보면 내가 해당 사건에 들인 시간 및 노력의 질과 양에 비하여 송구스러울 정도의 고평가를 받기도 하고, 때로는 이건 좀 억울하다 싶을 정도의 불만을 듣기도 한다. 결국 양자를 +, -하면 대체로 0으로 수렴할 듯 하기에,'땀은 정직하고, 노력만큼 결실을 맺는다'는 인류 최대의 신앙은 내 안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는 셈이다. 오늘 의뢰인 가족으로부터 사건수행과

소송을 돌보는 것

    소송을 한다는 것은 어떤 생명을 돌보는 것(의뢰인을 돌본다는 의미도 있지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건 소송 자체를 동/식물을 기르고 돌보는 것처럼 자주 살펴야 한다는 의미)과 같아 보인다.그래서 자주 들여다 보고 공을 들이고 볕을 쬐어주고 물을 대주면, 필히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특히 여러 사건을 같이 진행하게 될 때 이런 문제에 유의해야 한다), 그

법조인 출신 역사 속 인물: 페르마

페르마: 수학에서 페르마의 정리로 유명한 페르마는 사실 주업은 판사(!)였고 수학은 취미로 했다고 한다.수학에 있어 정규 코스를 밟은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일단 아마추어로 분류할 법하지만,그 탁월성에 있어서는 당대의 수학자들을 넘어섰고, 결정적으로 그 유명한 페르마의 정리를 남김으로써 수학자들에게 캡굴욕을 선사했다!...즉, 페르마의 정리의 증명에 관하여, 자신은 이미 증명을 했다면서 다만 그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응?! 어디서 많이 들어본;;)고 했으니,

honesty

    전에 어떤 법조인 분이 "나는 돈받은만큼만 일할 것이다"고 당당히 말했다는 것을,직접은 아니고 전문(hear say)으로 들은 적이 있다.당시에는 그래도 변호사의 본질이 장사꾼보다는 '다른 면'에 있지 않나 생각했었기 때문에, 자연히 그런 발언을 한 사람을 폄하하여 생각했었고, 나 자신은 그런 것과 거리가 멀다고 여겼었다.개업 후, 얼마를 버니 마니 숫자로 치환된 pride가 가장 우선시되는 듯 하고, ...내가

마음의 고향

    부산에서 법무관 3년 마치고 바로 개업을 할 때, 나도 처음에는 그곳에서 개업할 줄로만 알았었다.그러나 왠걸, 실제 개업하게 된 사무실은 서울에서 갑툭튀;같은 건물에서 벌써 4년째인데(최근 층은 변동이 있었다), 이웃 사무실의 나이많은 사무장 분은 날 만날 때마다 개업초기부터 현재까지 타관벽지에서 고생한다고 이야기한다-하지만 난 원래 서울이 고향이고 그 사무장 분에게도 분명히 말했었는데, 나이드신 분들이 남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