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격투게임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를 통해 캡콤사에서 최초로 선보였던 커맨드 입력 시스템. 지금 와서 보면 너무 익숙해져서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방향키와 버튼의 조합을 통하여 창출되는 각종의 기술과 그 시스템은 당시 오락실에 입문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내게 큰 충격이었다.




당시 나로서는 방향키와 버튼을 조합하여 기술을 발동시킨다는 것은 상상을 넘어선 영역이었고, 그랬기에 기껏해야 6개나 되는 버튼(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약손-중손-큰손, 약발-중발-큰발로 구성)을 조합하여 누르는 방식으로 기술을 찾다가 컴퓨터 대전상대방에게 처참하게 지기 일쑤였다.




그리고 성인이 되고 나중에 안 것이지만, 이와 같은 커맨드 입력 시스템에 관하여 캡콤에서 지적재산권 등록을 할 수도 있었지만, 이를 포기한 덕에 이후 숱하게 많은 게임에서 커맨드 입력 시스템을 차용하여 선 보일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커맨드 입력시스템은 초기에는 단순한 커맨드로 시작하였다가 이후 보다 복잡하고 정교한 커맨드를 요구하는 기술들이 늘어나면서 점차 복잡다기하게 되었다(극악난이도 커맨드인 더블스크류파일드라이더의 ←↑→↓←↑→↓← + 손이라든가, 사무라이 스피리츠 시리즈에서의 천패봉신참 등을 예로 들 수 있음).


그런데 이런 커맨드 시스템의 고도화에 따라 오락실에서는 일단의 고수 그룹과 그렇지 않은 유저가 확연히 갈리게 되었고, newbie들은 기술 구사조차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어 끼어들기가 어렵게 되었다. 대전격투게임을 흥행하게 했던 커맨드 시스템이 이제 신규 유저의 참여를 막는 진입장벽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런 문제점을 의식한 때문인지, 이번에는 다시 커맨드를 단순화시키거나, 캐릭터별로 서로 달랐던 커맨드를 통일시킨다거나, 심지어는 초보자를 감안하여 기술커맨드를 약식화시키는 별도의 옵션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다시 기존의 고수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이기도 했는데, 복잡한 커맨드이기에 고수가 아니고서는 해당 기술을 발동시키는 것만으로도 어렵던 것이, 이제 누구나 이를 쉽게 구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물론 커맨드 입력 외에도 공격과 방어의 타이밍 캐치, 연속기 등 여러 다른 요소가 많이 있기에 고수는 여전히 고수로 남았다). 그래서 다시 소수의 유저만이 선용할 수 있는 복잡한 커맨드는 일부 남는 쪽으로 게임들이 제작되게 되었다.




이렇게 커맨드 시스템의 난이도가 오락가락하는 와중에, 대전격투게임의 인기나 위상이 과거의 그것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추락하였고, 이를 넘어서 아예 오락실 자체가 동네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으며, 있더라도 대전격투게임 같은 것은 사실상 구세대 게임으로 분류되기 쉽다.




나는 고등학교까지 꾸준한 컴퓨터 게임 유저였지만, 고3때를 전후로 한 전국적인 스타크래프트 열풍을 쫓아가지 못했고, 그 때 스타에 익숙해지지 않은 탓인지 이후에 나오는 게임들에 전혀 적응하지 못하였으며, pc방과는 자연히 거리를 두게 되었다. 스타에서 말하는 tech-tree가 게임과 게임 사이에도 있는 것인지, 이후의 게임들은 많은 부분 스타에서의 인터페이스나 시스템을 차용하거나 이를 전제로 하여 만들어진 것들이 많았고, 배럭스를 짓지 않고 팩토리나 스타포트를 결코 짓지 못하듯이, 스타에 적응하지 못했던 나는 후속 게임들을 도저히 따라 갈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10여년 전 신림동에서 수험생활하던 때까지, 나는 따라가기 힘든 게임들만이 비치된 pc방보다는, 그래도 내가 아직 익숙한 대전격투게임이 남아 있는 오락실을 보다 자주 찾았었다. 그리고 현재는 그마저도 내가 익숙한 게임이 남아 있는 곳은 찾기가 어렵다.




때 아닌 격세지감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