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대법원장이었던 가인 김병로의 평전 구독 개시.




가인의 유년, 청년기와 관련하여, 고교 국사 시간 이후로 간만에 접하는 구한말 역사 장면이 새삼스럽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다.




가인이 일본에 유학하여 법학을 공부하는 동안 비싼 유학비용 때문에 접시닦이 등 알바를 겸하여 고학생활을 했던게 비단 가인 뿐 아니라 당시 다른 많은 유학생들의 보편적인 모습이었다는 사실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유학이란게 지금도 대체로 어느 정도 항산(恒産)의 보유를 전제로 한, (프티)부르주아의 인상을 주는 면이 있다보니, 나로서는 구한말 지식인 계층이 선대로부터 내려온 자산을 갖고 비교적 편안히 수학했을 것으로만 생각해 왔었다(물론 그런 이도 없지 않을 것이다).




한편 조선에서 법학을 천시한 탓에 갑오개혁 당시 마지못해 근대적 사법제도를 도입하면서 중인 계급에서 몇 명 뽑아 일본으로 법학을 배워오라고 국비유학을 보냈는데 이들이 ‘법률가 1세대’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안습인 것이, 중인 출신인 이들을 아니꼽게 보던 조정 때문에 귀국 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다가 겨우 법관양성소 교관 자리에 채용되었다고 함;;




그외에도 헤이그 비밀특사로 갔다가 자결한 것으로 유명한 이준 열사가 법관양성소 2기생이었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된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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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재밌게 볼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