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선악을 넘어서” 중 제4장 잠언과 간주곡 68번을 보면, “[난 그것을 했다]라고 내 기억은 말한다. [내가 그것을 했을 리가 없다]라고 내 자존심은 말하며 좀체로 굽히려 들지 않는다. 결국에 가서는 기억이 지고 만다”고 쓰여 있다. 국내 한 판사도 끝까지 범행을 뉘우치지 않고 시종 부인으로 일관한 어느 피고인에게 엄중한 형벌을 선고하면서, 그 훈계를 위하여 니체의 위 구절을 인용하였다고 한다(아울러 위 판사는 과거의 실수를 인정할 때 그 실수를 딛고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도 밝혔다).


 

 

즉, 많은 이들은 객관적인 진실을 자기의 자존심의 시녀로 취급하기에, 쉽게 거짓에 빠져들고 진실을 은폐, 왜곡하며, 결국에는 자기 자신마저 기만하게 된다는 것인데, 이는 반드시 심리학상 인지부조화론 등을 꺼내들지 않고도 하나의 일반적 경향성으로서 다룰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성은 니체의 시대에서 현시대에 이르기까지 좀 더 부정적인 방향성을 띠고 발전한 것 외에는 크게 차이가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니체는 또한 사람의 자존심을 그 허영심과 이음동의어로 여겼는데, 예컨대, 잠언과 간주곡 111번 “우리의 허영심이 가장 큰 상처를 입는 것은 우리의 자존심이 상처를 입을 때이다”나 143번 “우리의 허영심은 우리가 가장 잘하는 일이 우리가 하기에 가장 어려운 일로 인식되기를 바란다 (…)”을 들 수 있다.


 

 

우리의 자존심은 많은 면에서 과거에 이미 있었던 일에 그 바탕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의 과오는 때때로 치명적으로 작용하여 개인의 자존감을 철저히 파괴하기도 하고, 도저히 거기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하기 일쑤며, 혹자는 그 진실을 거부하고 종국에는 진실에 관한 기억을 압도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 자존심이라는 것을 차라리 미래에 건다면 어떨까? 미래에서 자존심의 근거를 발견한다는 것은 그 수사법의 재치 이상으로, 내면에 대한 강력한 호소력이 있다. 자신의 오류를 인정할 수 있는 용기와 미래를 향한 탁월한 명예 감각이 결합될 때, 왜곡되지 않은 본래의 인간상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